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인 그레이 (문단 편집) == 이야깃거리 == * 메리 1세와 엘리자베스 1세의 대립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에 비해 제인 그레이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한국 같은 상당히 떨어져 있는 외국에서만 그렇고, 같은 유럽권 내에선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처형을 주제로 한 명화(바로 위의 그림)도 있는 걸 보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미국의 유명 작가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에도 주요 배역은 아니지만 등장할 정도니 간접적으로나마 알고 있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 독실한 성공회 신자로 부모와 달리 내성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극성맞고 비정한 부모만 아니었으면 그냥 평범한 귀족으로 평범하게 결혼해서 무난한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었기에 더 비극적인 색채를 띠는 여인. 당대 최고 학자들에게 수학하면서 신학과 어학 등에 뛰어났던 것으로 보아 머리도 좋았던 듯. * 여동생으로 캐서린 그레이(1540~1568), 메리 그레이(1545?~1578)가 있다. 캐서린과 메리도 큰언니 제인처럼 부모와의 관계가 매우 나빴고, 아버지 헨리 그레이와 제인이 처형되고 어머니가 재혼한 이후로는 어머니와 의절했다. 두 사람은 엘리자베스 1세 재위 초기에는 잠재적인 상속인으로 여겨진 적도 있었으나[* 헨리 8세 말년에 제정한 계승법에 의하면 헨리 8세 직계 다음에는 헨리 8세의 여동생 [[메리 튜더]](1496~1533)의 후손에게 우선권이 있었는데(스코틀랜드로 시집 간 헨리 8세 누나 [[마거릿 튜더|마거릿]]의 후손은 스코틀랜드와의 충돌 때문에 헨리 8세가 계승 순위에서 제외함), 엘리자베스 1세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그레이 자매는 메리 튜더의 장녀 프랜시스 브랜든의 자녀들이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 때문에[* 물론 제인 그레이의 사건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1세에게 감시를 받으며 살다가 허락받지 않은 결혼을 하고 아들들을 낳았다는 이유로 런던탑에 투옥되었고, 궁정에서 추방당하면서 계승권을 잃었다.[* 참고로 캐서린 그레이의 남편은 제1대 서머싯 공작인 에드워드 시모어(헨리 8세의 세 번째 부인 [[제인 시모어]]의 큰 오빠이자 [[에드워드 6세]]의 큰 외삼촌이었던 그 사람 맞다.)의 아들인 허트포트 백작 에드워드 시모어(1539~1621)이다.(물론 혼인 무효가 선언되기는 했지만) 그녀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이들 중 장남인 에드워드 시모어는 나중에 왕으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자신의 집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여 평생을 신중하게 처신했고, 그 대신 자손을 많이 남겨서 지금까지 그 혈통이 이어지고 있다. 그 아들인 윌리엄 시모어의 대인 영국 내전 때 끝까지 스튜어트 왕실에 충성한 공적으로 증조부때 제인 그레이 사건으로 빼앗긴 서머싯 공작 작위를 돌려받아, 제2대 공작이 되었다. 다만 그들의 자손은 1750년 끊어졌고, 먼 친척(캐서린 그레이의 남편 허트포트 백작의 이복형{에드워드 시모어의 차남인 에드워드 경(1529~1593)의 후손}이 물려받아 현재의 공작가는 그레이 가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캐서린 그레이의 동생 메리 그레이는 자녀가 없었다.] 이후 엘리자베스 1세의 후계자로는 (헨리 8세가 제정한 계승법에도 불구하고) [[메리 1세(스코틀랜드)|메리 여왕]]과 그녀의 아들 [[제임스 1세]]가 떠오르게 되었다.[* 사실 메리 튜더의 차녀 엘레노어 브랜든(1519~1547)의 외동딸 마거릿 클리포드(1540~1596)도 있었지만 여기도 여왕의 결혼 계획에 반대하다 추방당해서 배제되었다.] * [[트리니티 블러드]]의 등장인물인 [[제인 주디스 조슬린]]의 모티브라 여겨지는 인물이다. 처한 상황이나 성격은 정반대(...).[* 제인 주디스 조슬린은 본인이 에린([[아일랜드]]) 공작이며, 동시에 알비온의 해군 제독이었다. 제인 그레이와 달리 본인이 사람들을 잡고 휘두를지언정, 휘둘릴 만한 인물이 아니다. 무엇보다 작중 [[메리 1세]]가 모티브가 된 [[메리 스펜서]]를 몰락시키고 [[엘리자베스 1세]]가 모티브가 된 [[에스델 블랑셰]]를 여왕으로 옹립하는 데 본인이 일조하였다는 게 큰 차이점. 본인은 왕에 어울린다 생각하지 않고, 처음에는 절친인 메리 스펜서를 왕으로 옹립하는 게 낫다 생각했으나, 메리가 조모인 브리짓 1세(제인에게는 백모)의 병세를 악화시키는 데 일조했음을 파악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 대한민국의 가수 [[레이디 제인(가수)|레이디 제인]]이 여기서 이름을 따와서 지었다고 하는데 '''아니다.''' 레이디 제인 본인은 롤링스톤즈의 동명 곡에 따와서 지은 이름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롤링스톤즈의 레이디 제인은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 나오는 등장 인물에서 따왔다고 한다. * 문피아 대체역사물 《[[여왕전하의 비선실세]]》에서도 등장한다. 메리 1세 여왕이 제인을 죽이기를 원치 않는 것을 안 주인공이 헌책을 하여 제인을 살려줄 방도를 마련하면서 생존 플래그가 꽂혔다. 이후 제인은 여왕에게 충성을 서약하는 조건으로 리치몬드 궁에 이감된 뒤, 형식상으로는 유폐지만 실질적으로는 경비병들에게 정중한 대우를 받고 성벽을 나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유로운 외출을 하며 평온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가 주인공과 연애 플래그를 꽂아 결혼도 하고, 박탈당한 작위를 돌려받으며 궁정에 복귀하고, 스코틀랜드의 왕위에도 앉게 되는 등, 작중 대체역사 최대의 수혜자가 됐다. [[분류:잉글랜드 여왕]][[분류:아일랜드 여왕]][[분류:비정통 군주]][[분류:튜더 가문]][[분류:1554년 사망]][[분류:레스터 출신 인물]][[분류:폐위된 군주]][[분류:참수된 인물]][[분류:프랑스 왕위 요구자]][[분류:세인트 피터 애드 빈큘라 교회 안장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